-
평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카테고리 없음 2022. 3. 14. 00:48
'파주' 하면 뭐가 생각나는지 자유롭게? 임진각? 판문점, 파주에 산다고 하면 정말 먼 곳에 산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북한과 마주보고 있어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파주는 분단과 전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최북단의 도시다. 그러나 이는 파주의 일부에 불과하다. 긴장과 소외의 이미지는 잊으셨으면 좋겠다. 평화와 번영의 도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를 소개한다.
파주에는 '고개, 고개, 둑'이라는 뜻이 있다. 파주에는 한강과 일찍이 칠중하로 불렸던 임진강을 비롯하여 공릉천, 문산천, 갈곡천, 미암천 등 크고 작은 강이 많다. 북에서 발원해 굽이굽이 흐르는 임진강과 남에서 최대의 한강은 다리 위에서 만나 서해로 흐른다. 서울보다 큰 면적에 대도시 못지않은 46만 명이 사는 파주시를 대표하는 길은 통일로와 자유다. 서울 은평구 구파발에서 파주 문산읍 임진각에 이르는 통일로는 목포와 신의주를 잇는 국도 통일로는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남북대화를 시작한 1971년 착공해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1972년 완공됐다.한반도의 중심, 만남과 연결의 땅
멈춰있는 임진각 장단역의 증기기관차(좌)/도라산역까지 갈 수 있는 하행선 철교(좌)(우) 파주는 한반도의 중심이자 연결장소였다. 기차는 남북을 잇고, 강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임진강은 한강을 만나 더 큰 바다로 흘렀다. 과거 신의주까지 달리던 경의선 열차는 다시 달릴 채비를 하고 있다. 남북은 철도와 도로 연결에 합의하고 2002년 9월 경의선 착공식을 가진 뒤 2003년 6월 단절됐던 구간을 연결했다. 2007년 11월부터 경의선 문산봉동 구간에서 화물열차가 정기운행하기도 했다. 지금은 임진강역에서 끝나는 경의선 열차가 예전처럼 28개 정거장을 거쳐 신의주까지 갈 날이 멀지 않기를 기대한다.평화관광의 시작 임진각
통일의 날 철거되는 독개다리(왼쪽)/한국전쟁 때 사용된 지하벙커 BEAT131(오른쪽) 파주의 평화체험은 임진각에서 시작된다. 임진각은 망배단으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실향민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제사를 지내는 분단과 이산의 아픔이 가득한 곳이다. 최근에는 자유의 다리 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평화에 대한 간절한 욕구를 더하고 있다. 임진강 독교는 625전쟁 때 파괴되고 교각만 남아 있던 것을 경의선 상행선 철교에 다리를 설치해 관광시설로 만들었다. 독교에 들어서면 민간인 통제구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군인의 구역이자 전쟁의 구역인 이곳에는 BEAT131이 있다. 한국전쟁시 지하벙커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당시의 군용품과 영상체험시설 등이 있다. 전쟁 때 자유의 다리를 건넌 수많은 포로들은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왔을까. 전쟁이 끝난 뒤 남북 어디에도 남지 못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이 떠오른다.곤돌라에서 만난 풍경 - 끝나지 않는 전쟁
민통선 구간으로 가는 곤돌라와 선명한 '지뢰' 글자인 임진각에 평화 곤돌라가 생겼다. 곤돌라를 타면 임진강을 건너 민통선 구간을 통해 북쪽으로 갈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개성과 평양으로 갈 수 있는 통일대교가 있다. 곤돌라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임진강의 잔잔하고 평화로운 파도였을까. 곤돌라 너머에 지뢰라고 쓰인 선명한 붉은 글씨가 말해 주는 금단의 땅이었을까.
곤돌라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캠프 그리브스가 있는 캠프 그리브스는 1953년 미군 주둔을 위해 제공했다가 2007년 반환된 미군 반환 공여지로 몇 년 전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지금은 캠프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고 끝에 있는 전시관만 둘러볼 수 있어 아쉽다. 캠프 그리브스 내 갤러리 그리브스는 한때 미군 볼링장이었던 건물에서 지금은 DMZ와 분단 관련 전시를 하는 갤러리로 바뀌었다.
전쟁의 격전지이자 분단의 현장이기도 한 파주에는 치열하고 참혹했던 전쟁을 기리는 기념물이 많이 남아 있다. 파주 적성면에 있는 영국군 솔마리 전투공원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영국군 중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글로스터셔 연대의 희생을 기리는 곳이다. 문산역 인근에 조성된 통일공원은 1953년 휴전회담 당시 유엔 종군기자센터가 있던 곳이다. 한국전 순직종군기자 추모비, 육탄 10용사 충용탑,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이유준 대령과 김만술 소위 기념상 등도 있다.
아직도 파주는 전체 면적의 88%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어 군부대 주변 지역 주민들은 사격장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왜 한국은 아직도 정전상태를 끝내지 못하고 있을까.파주의 봄, 걸어서 DMZ 2018년 한반도에도 '평화의 봄'이 찾아왔다. 남북은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확인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한 실질적 조치는 427 판문점 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에 따라 비무장지대 내에서 이루어졌다. 감시소인 GP가 철거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비무장화됐으며 서해 북방한계선 긴장완화의 일환으로 남북이 함께 한강 하구 수로 조사를 벌였다.
비무장지대에 'DMZ 평화의 길'이 조성되면서 2019년 8월 파주 코스가 개방되었다. 임진각-통일대교-도라전망대-2통문-철거 GP를 도는 총 21km 구간이다. 비무장지대 안을 걸어 군사분계선 남쪽 700m에 있는 철거 GP 앞에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그동안 아프리카 돼지 수집가와 코로나 19로 운영이 금지됐고,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운영이 중단됐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는 진전이 없지만 그렇더라도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멈추더라도 그동안의 수많은 노력이 쌓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기 때문이다.
파주는 지리, 문화, 군사적 요충지로서 항상 한반도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파주에는 인물도 많다. 파주의 삼현이라 불리는 율곡 이이, 황희 정승, 윤관 장군 유적 탐방은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성리학의 대가 우계성혼과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도 파주 사람이다. 허준 선생의 묘가 민통선 안에 있어 아름다운 조선왕릉인 파주 삼릉(영릉)과 장릉은 언제 가도 좋다.
자유로를 마음껏 달리던 자동차들은 통일대교 앞에서 꼬리를 문다. 막혀 있다는 것은 언젠가 그것을 통과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통일대교를 넘어서면 새로운 땅과 사람과 가능성이 열린다. 파주는 과거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딛고 도농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도시다. 평화누리길과 임진강 생태탐방로, 감악산 출렁다리가 여러분을 부르는 평화생태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분단을 단절과 장벽이 아니라 연결과 개방으로 바꾸고, 다양성과 유연성, 국제성을 바탕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잇고, 남과 북을 넘어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평화도시 파주가 자랑스럽다.
*사진 : 필자제공 Written by 김효은 대진대 DMZ연구원 객원교수, 민주평통 상임위원